짐을 짊어진 이유

출석하는 교회에서 단체로 아이들과 영화 '천로역정: 천국을 찾아서'를 보러 갔다. 동명 기독교 소설 '천로역정'을 애니메이션화 것으로 멸망의 도시에서 절망에 빠져 살아가던 주인공 '크리스천'이 우연히 얻게 된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서 말한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천국 도시'를 찾아 떠난다는 내용이다.

영화 초반부, 멸망의 도시에서 살던 크리스천은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알 수 없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이 짐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자신만이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작았던 짐은 시간이 갈수록, 천국의 도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계속될수록 커져만 갔고, 점점 감당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크리스천은 외쳤다. 제발 감당할 수 없는 이 짐을 벗겨달라고, 이 짐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괴로워하는 크리스천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에게도 짐이 있지 않은가, 나를 괴롭히는 짐은 무엇인가?’

내가 책임져야 할 것,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들,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환경. 괴로워하는 그를 보며 한시라도 빨리 누군가 나타나서 그의 짐을 벗겨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어쩌면 그를 통해 나를 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때 영화를 같이 보던 여덟 살 둘째 아이가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작게 귀엣말을 했다.

"엄마, 저 짐이 커질 수록 크리스천의 힘이 세지는 거지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잠깐 뜸을 들이고 "응, 그럼." 이라고 짧게 대꾸해주었다. 그리곤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내 마음 속에는 주변으로부터 억지로 지워진 짐, 어쩌면 내 스스로 만들어낸 짐이 가득했고, 그로 인한 불평과 불만이 자주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처럼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 나는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성장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진 이유일지도.

짧은 질문에 큰 울림이 느껴졌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이 새삼 깊게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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