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1970~80년대, 생활기록부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쓸 데 없는 항목들이 많았다. 부모님의 학력도 물론 그러하거니와 부모님의 직업에 자가용 유무까지... 자신있게 부모님의 학벌과 직업을 쓰는 친구부터 쭈뼛거리며 한 참을 연필심에 침 묻히던 친구들 속에 난 국졸이던 아버지의 학벌을 고졸로 바꿔 썼다. 주눅들고 싶지 않은 어린 마음에 저지른 대리 학력위조였다. 

하지만 장래희망만은 모두들 거창했다. 내 꿈은 외교관이었고 외국에서 사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는게 이유였다. 60명이 넘는 한 반에서 남자 아이들의 상당수는 장래희망란에 대통령이라 썼었다. 외교관에 의사, 판검사가 뒤를 이었고 과학기술을 우대하던 80년대 들어서는 단연 과학자가 TOP이었다. 여자 아이들 중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교수, 나머진 선생님과 공무원이었다. IMF가 지나고 2000년대 들어서는 남녀 할 것 없이 공무원이 1위였고 벤처기업가나 프로게이머, 연예인 등이 장래희망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심지어 건물주가 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도 심심찮게 올랐으니 '장래희망'이란 그야말로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직업' 그 자체였다.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실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이 꿈꾸는 직업 1위는 '운동선수'로 나타났다. 꾸준히 1위 자리를 지켜온 '교사'는 2위로 뒤쳐졌고 인터넷방송 진행자인 '유튜버'가 5위로 급부상했다. 운동선수와 아이돌가수, 유튜버라는 아이들의 꿈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직업군들을 보여주고 있어 변화하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여전히 '돈벌이'가 장래희망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음식을 늘어놓고 먹는 것만 보여주거나 인터넷 게임을 중계하면서 1년에 십 수억원에 달하는 돈을 쉽게 번다는 측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장래희망이 장래직업을 지칭한다면 좀 더 다양한 직업의 세계를 보여줘야 할 책임이 우리 어른들, 그리고 학교와 언론,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적어도 초등학생이라면 좀 더 '수입'과 거리가 있더라도 꿈다운 꿈을 꾸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장래희망의 개념이 "넌 커서 뭐가 될래?"라기보다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고 싶니?"라는 것으로 변할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은 뭐라고 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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