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세이 86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행복에세이 86호]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송인성 기자
  • 승인 2019.02.25 1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눈 녹은 장독 뚜껑이 햇살에 유난히 반짝이는 날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모집은 여전히 조용하고 한적했다. 고모의 손 때가 묻은 마당 평상과 먼지 쌓인 고모부의 창고, 그리고 내 사진이 걸린 작은 방까지.. 고모네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다.

고모와 고모부는 한 때 우리 집 경제사정으로 인해 조카인 나를 맡아 키워주셨던 분들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으셨던 터라 날 아들처럼 여기고 챙겨 주셨다. 아침 등교길에 고모 몰래 가방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 주시며 내 볼을 꼬집으시던 고모부의 크고 두툼한 손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시인의 푸르른 날은 초록이 지친 가을 꽃자리지만 고모의 그 날은 녹다 만 눈이 골목 어귀에 반짝이던 겨울 끝자락이다. 젊은 연인마냥 늘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았던 두 분의 행복은 고모부의 사고로 더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굴삭기 기사였던 고모부는 10년 전 눈이 녹아 빗물이 된다는 우수(雨水)에 사고로 돌아가셨다. 건설현장 지관 매설 작업을 하던 중 흙막이벽이 무너진 사고였다. 얼어 있던 땅 속 수분이 녹아 지반이 약해진 탓이라고들 했다.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장례를 치른 뒤 고모부의 유품을 정리하며 고모는 서럽게 우셨다. 고모부가 남긴 옷가지의 대부분은 작업복이었고 신발도 그러했다. 고모는 고모부가 일 밖에 모르고 사시다 갔다고 서러워했다. "평생 일만 하다 가신 양반... 차라리 내가 죽고 당신이 좋은 세상 좀 살지 그랬어" 고모는 고모부보다 먼저 가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한동안 집 밖 출입을 하지 않으셨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해마다 고모부가 돌아가신 이 날이면 나는 늘 고모를 찾는다. 그리고 그 때마다 늘 같은 말로 고모를 위로한다. "고모부는 일만 하시다 간 거 아니에요. 굴삭기 운전대를 잡은 손 외에 또 한 손은 늘 고모 손을 잡고 있었잖아요. 고모부도 행복하셨을 거에요."

늘 그래왔듯 고모와 난 점심 반주로 막걸리를 나누며 그리운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 할 참이다. 그러다 얼큰해지면 가수 송창식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도 한 곡 뽑아 올릴 것이다. 파란 하늘빛이 눈부시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