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세이 89호] 나에게 가는 길
[행복에세이 89호] 나에게 가는 길
  • 장진숙 기자
  • 승인 2019.05.29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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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는 길

돌도 안된 어린 손주를 앞에 앉혀놓고 트로트 한 자락 구성지게 뽑아본다. 갑작스런 노래에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아이는 곧 흥미를 잃고 장난감이 있는 거실 한 켠으로 기어가 버렸다. 혼자 좀 노나 싶던 손주가 졸린지울며 짜증을 부린다. 포대기를 대고 아기를 업은 후 베란다로 나가 아까 불렀던 트로트를나지막이 다시 불렀다. 박자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어 대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울어대던 아기가 금세 잠이 들었다.

“녀석, 누가 제 엄마 아들 아니랄까봐 성깔은…”

비싼 등록금 대주며 대학까지 가르쳐 놓은 게 아까워, 딸에게 아이를 봐줄 테니 일을 하라고 하긴했지만 환갑 넘어 어린 아이를 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물론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손주 얼굴을 볼 때 마다 행복했지만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서고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한빌라 입구에 의자를 두고 지팡이에 기대어홀로 앉아 계신 할머니를 보았다. 세월이 겹겹이 내려 앉은 주름진얼굴에는 어떠한 표정이나 감정이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당신이 지나온 삶의 자취를 들여다보고 계셨을까? 일장춘몽 같았던 자신의 인생을 관조하고 계신 걸까? 그곳에 계신 것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는데, 왜 오늘 따라 어르신의 표정과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20년 후의 내 모습이겠구나, 하는생각때문일 것이다.

워킹맘인 딸아이가 늦은 퇴근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더 늦은 퇴근을 한다. 깊어진 생각만큼이나 짙게 깔린 어둠을 등지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다 얼마 전 읽은 법정스님의 산문 한 구절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되뇌었다.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별빛처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그날그날 삶의 자취를 낱낱이 살피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세상의 눈으로 자신을 비춰 보는, 이런 일들을 통해 노년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에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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